
백수가 되고 나서 심심풀이 삼아 지난 이력서를 들여다봤다.
가관이었다.
학생 때부터 훑어보면 꽤 다양하다.
고기집, 횟집, 놀이공원, PC 유지보수, 노트북 판매, 커뮤니티 관리자, 마케팅, 그리고 가장 최근의 서비스직까지.
종류는 많은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직을 할 때마다 이전 경력을 인정받는 일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연봉이 2~3천만 원 언저리에서 내내 머물러 있었다.
가장 최근의 서비스직 3년도 마찬가지다.
서비스직 종사자라면 공감할 텐데, 이 경력은 같은 서비스직으로 이직할 때는 어느 정도 이점이 있을지 몰라도, 연봉을 올리는 데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3년을 일했어도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3년 전의 기대
사실 그 회사에 처음 들어갈 때는 계산이 있었다.
여수 외에 다른 지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속 다니다 보면 진급의 기회도 있을 거고, 사무 업무를 맡게 되면 마케팅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이직할 때 쓸 수 있는 경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서비스직이라도 윗 단계로 올라가면 경력으로 인정받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3년을 버텼다.
하지만 그 회사는 여느 서비스직 업체와 다르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고, 급여는 박봉이었다.
그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멘탈이 산산조각 났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연봉은 박봉이고, 회사의 운영방식이나 비전 등 내 발전도, 회사의 발전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나왔다.

3개월 동안 신나게 놀았다
퇴사 후 3개월은 그냥 놀았다. 신나게.
틈틈이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박봉으로 일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이번엔 여천공단 협력사라도 들어가서 몸이 좀 고생하더라도 돈을 제대로 버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2~30대가 아니다 보니 1차적으로 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천공단 특성상 자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들이 많은데, 우대 조건에 아예 '자차 보유'를 내걸고 있는 공고가 수두룩했다.
거기다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턱없이 낮아서 1년 내내 채용 공고가 올라오는 회사들도 많았다.
덜 배고픈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허리가 썩 좋지 않아서 수술 이야기까지 나온 적이 있는 몸이다 보니, 무작정 아무 데나 들어갈 수만은 없었다.
적당한 밸런스를 찾아야 했다. 그 나이에, 인맥도 없이.
10여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다.
공단 용역 경비
조금씩 초조해질 무렵, 공단 용역 경비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면접을 봤다. 그리고 채용이 됐다.
마흔에 경비원이라니, 뭔가 이상한 문장 같기도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됐다. 일단은 그렇게 됐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0대 아저씨의 나의 방황 이야기 (0) | 2026.06.01 |
|---|---|
| 나의 첫 해외여행 이야기 (0) | 2026.05.30 |
| 내 나이 마흔. 다시 백수가 되었다. (0) | 2026.05.29 |
| 지스타2024, 1일차 야외전시장 관람 후기 (0) | 2024.11.14 |
| 지스타2024 입장권 예매 및 입장 방법 (0) | 2024.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