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 글에서 2019년 도쿄 여행 이야기를 했다.
그 여행이 가능했던 건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썼는데, 오늘은 그 '회사를 그만두기까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간 건 마케팅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전공도 아니고,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던 나에게 회사들은 하나같이 '전화 영업'을 권했다.
네이버 상위 노출을 시켜준다느니, 블로그 체험단을 저렴하게 해준다느니 하는 영업 전화.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그 전화들.
당시 나는 블로그를 한창 운영하고 있었던 터라 그 전화 영업이 얼마나 집요하고,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하는 방식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건 못 하겠다고 했다.
밑바닥부터라도 배우면서 마케팅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일은 구해지지 않아서, 어느 온라인 쇼핑몰 채팅 상담원을 지원했다.
한 달간 교육을 받고 드디어 첫 출근을 했는데, 그날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모바일게임 커뮤니티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채팅 상담사로 일한 건 딱 하루였다. 그날 바로 그만두고 모바일게임 커뮤니티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은 게임 QA, 커뮤니티 운영 등을 대행해주는 회사였다.
회사 배려로 일학습병행제를 활용해 토요일에는 마케팅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게임을 일로 하는 것은 정말 달랐다.
커뮤니티 운영이라고 하면 욕설 달린 글 삭제하고 제재하는 게 전부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게임 내 이슈를 정리해서 개발사에 전달하고, 유저 문의에 답변도 해야 한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담당했던 게임은 어떻게든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고, 해외 개발사의 게임 커뮤니티를 담당하던 직원이 퇴사하면서 내가 그 자리를 맡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고, 해본 적도 없는 게임이었다.
이전 게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캐시 아이템 지원 같은 걸 해줬는데, 이 해외 개발사는 그런 지원이 없었다.
운영자 계정을 만들어줘도 일정 기간 지나면 없애버렸다.

결국 내 사비로 30만 원어치 캐시를 질렀다.
게임을 직접 해보면서 시스템을 파악하려고. 그런데 서비스된 지 오래된 게임에서 3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유저들 사이에서 쌓인 암묵적인 룰이나 명칭 같은 건 돈을 써도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었다.
출근이 고통스러웠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모니터를 볼 때마다 두통이 왔다.
사람들은 좋았다.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업무를 너무 못 하고 있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년 정도 다니다가 퇴사했다.
그리고 그 직후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여수로 내려왔다

도쿄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여수로 내려왔다.
부모님이 계신 여수로 가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건 그쯤 되면 이미 꽤 헐거워져 있었다.
여수로 내려와서 펜션 관리자로 취직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직원이 자기 일을 슬쩍슬쩍 내게 떠넘기면서 정작 본인은 펜션 바로 옆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바쁘고 그 사람은 딴 데서 노닥거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한동안 일자리를 못 구했다.
음식물 처리기 마케터
몇 달을 백수로 지내다가 지인 소개로 취업을 하게 됐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이것저것 사업을 시도하던 중 음식물 처리기 여수 유통 사업을 시작하게 됐고, 전라남도로부터 고용 관련 지원을 받으면서 나를 채용한 것이었다.
주 업무는 음식물 처리기 홍보. 온라인 스토어도 만들고, 유튜브도 개설하고, 인스타그램도 만들었다. 이런저런 시도를 꽤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영세한 업체였다.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온라인에서 뭔가 팔리게 하려면 광고든 프로모션이든 예산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 아무것도 팔리지 않았다.

오프라인 홍보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던져봤지만 역시 예산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실제로 진행된 것이 신축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 광고였다.
처음에 업체 측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던 방식이었는데, 강하게 밀어붙여서 1회성으로 시도해보게 됐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판매가 몇 건 이뤄졌고, 광고비를 회수하고도 이익이 제법 남았다.
검증이 됐으니 계속 시도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지런히 신축 아파트 정보를 찾아서 광고를 제안했다.
하지만 업체는 돈을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잡일을 병행하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지원사업이 종료되면서 계약도 끝났다.
아쉬웠다. 방향은 맞았는데.
온라인 쇼핑몰 관리
다음은 또 지인 일을 돕게 됐다. 온라인 스토어 관리였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11번가, 지마켓, 위메프에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상품을 등록하고 발주를 담당했다.
이번엔 제법 팔렸다. 나름 굴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매출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년을 채우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적응을 못 하거나 버티지 못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경기가 안 좋아서, 본의 아니게 일을 잃었다.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닌데 결과는 똑같이 실직이었다.

두 번의 실직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어느새 나이는 서른을 넘겼다.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고 가정도 이루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력서를 여러 곳에 넣었다.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딱 한 곳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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