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처럼 SNS를 하면서 일본 여행 관련 정보를 둘러보던 중, 흥미로운 소식을 발견했습니다.
나라현 카시하라시에 캡콤의 인기 대전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 동상들이 세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지역과 관련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지역을 홍보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를 들어 돗토리현의 코난 마을, 구마모토현의 원피스 동상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카시하라시와 스트리트 파이터의 연결고리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카시라하시는 어디이고, 거기에 대체 왜?'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직접 다녀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사카 난바에서 야마토야기역까지

카시하라시의 스트리트 파이터 동상 투어는 야마토야기역에서 시작됩니다.
오사카 난바역에서 전철을 타고 약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대도시 오사카에서 조금씩 벗어나 한적한 풍경이 펼쳐지는 전철 여행은 그 자체로도 즐거웠습니다.
야마토야기역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조용함'이었습니다.
오사카의 번화함과는 완전히 다른, 평온한 지방 도시의 분위기가 역 주변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발견 : 류(Ryu)의 동상

야마토야기역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카시하라시 관광 교류 센터였습니다.
야마토야기역에서 나와서 미스터도넛 가게가 있는 방향으로 쭉 이동하다보면 1층에 이렇게 류 동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황금색 동상인데, 안타깝게도 크기는 작습니다.
실물 비율로 제작되었을 줄 알았는데...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류 (RYU)
프로필
- 신장 : 175cm
- 체중 : 85kg
- 생일 : 7월 21일
- 대표 기술 : 파동권, 승룡권, 용권선풍각
카시하라시와 주식회사 캡콤의 인연은 19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캡콤 창업자인 츠지모토 켄조 회장이 나라현 카시하라시 출신이라는 인연으로,1995년에 개최된 「후지와라쿄 창도 1300년제 로만토피아 후지와라쿄 ’95」 행사에서 캡콤이 후지와라쿄관에 전시를 진행하였고, 대인기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II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스트리트 파이터 II 되살아나는 후지와라쿄 – 시대를 달린 파이터들 –」을 상영했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22년 8월 30일, 스트리트 파이터 탄생 35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에 카시하라시와 캡콤은 포괄적 연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앞으로 역사·문화 자원의 효과적인 활용, 관광 진흥, 지역 홍보 등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 동상은 도시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탠 6명의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2023년 5월 27일에 건립되었습니다.

일본의 이런 문화는 조금 부럽습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의 컨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그게 실제로 관광 상품이 된다는 것.
솔직히 스트리트 파이터2의 동상을 만들지 않았다면 저같은 외국인이 카시하라시를 어떻게 알고 찾아가겠습니까?
뭐라도 하니까 일부러라도 찾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어디서 뭐 때문에 떴다 하면 그거 따라 하기 바쁘고... 전국에 케이블카가 몇 개고, 대관람차와 출렁다리가 몇 개인지....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게 중요한데 그게 안 되고 남들 하는거 따라하기 바쁘니 어딜가도 비슷비슷해서 여행하기가 짜증납니다.
교통편이나 편한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잘 만들었네요.
좀만 더 컸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어 봅니다.
Statue of Ryu from Street Fighter · 1 Chome-6-8 Naizencho, Kashihara, Nara 634-0804 일본
★★★★☆ · 관광 명소
www.google.com
두 번째 발견 : 춘리(Chun-Li)의 동상

류의 동상을 보고 난 후, 역에서 도보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시하라시 관광과 청사로 향했습니다.
청사 현관 앞에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인기 캐릭터, 춘리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특유의 귀여운 포즈를 취한 춘리는 여성 캐릭터답게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춘리의 저 굵고 튼실한 허벅지를 모니터가 아닌 현실에서 보게 되다니...!
특히 머리에 묶은 리본과 팔의 팔찌 같은 액세서리 디테일까지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어, 제작진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춘리 (CHUN-LI)
프로필
- 신장 : 169cm
- 체중 : 비밀♡
- 생일 : 3월 1일
- 대표 기술 : 스피닝 버드 킥, 백열각, 기공권
프로필 아래 쪽에 적힌 내용은 류의 동상에 적힌 내용과 동일했고 동상 설립일에 대한 내용만 달랐습니다.
'이 동상은 정부 크라우드 펀딩 제도를 활용해 많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2024년 3월 9일에 건립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네요.

지금의 3~40대들이 한번쯤 사랑에 빠졌던 캐릭터 춘리.


류 동상 볼 때는 몰랐는데, 기부자의 이름을 한 켠에 새겨 놓았습니다.

이곳 역시 조용했지만, 저는 혼자 신나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Chun-Li Statue · 1 Chome-1-60 Naizencho, Kashihara, Nara 634-0804 일본
★★★★☆ · 관광 명소
www.google.com

구글맵을 보니 바로 근처에 또 뭔가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춘리 디자인의 맨홀 뚜껑이 있었습니다.
맨홀 하나도 덕후의 덕심을 자극하는 곳.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 일본입니다.

혹시 더 있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류 디자인의 맨홀 뚜껑도 있네요.
디자인 맨홀이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남은 하나는 끝내 찾지 못 했습니다.
그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카시하라시를 걷다

찾아보니 동상말고도 스트리트 파이터 디자인의 조형물이 몇 개 더 있길래 그 것들을 찾아서 걸어봤습니다.
춘리 동상에서 도보로 약 6분 거리에 위치한 우네비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사 안내판에 스트리트 파이터 디자인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을까요...?

아... 플랫폼 쪽에 현재 역명과 이전역, 다음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로 꾸며졌네요.
근데... 누구신지....??
저는 모르는 캐릭터들입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3 이후에나 등장하는 캐릭터들인 모양입니다.
검색해보니 몇 개의 역 플랫폼에 캐릭터를 활용한 표지판이 있다고 하는데, 다 둘러보지는 못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래피티(?) 작품같은게 전시된 곳이 있다길래 한참을 걸어서 찾아가봤습니다.

가시하라 만요 홀이라고 문화홀과 어린이 과학관, 도서관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는데 스트리트 파이터 관련 작품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책읽고 공부하는 곳인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 기웃거리는 것은 민폐인 것 같아서 바로 빠져나왔습니다.
세 번째 발견 : 에드몬드 혼다(E. Honda)의 동상
구글맵에서 '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 또는 'street fighter'를 검색하여 남은 동상들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긴테쓰 카시하라 진구마에역이었습니다.
전철을 이용하면 금방 이동할 수 있었지만,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또 다시 걸었습니다.
중간에 허탕을 쳐서 시간이 더 걸렸는데, 야마토야기역에서 카시하라 진구마에역까지는 도보로 약 50분 정도 걸립니다.
걷으면서 뭐 대단한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일본의 한 지방 도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처럼 걸으며 풍경보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길이 대부분 평지이므로 한번쯤 걸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상업 시설들이 별로 없으니 역에서 미리 목을 축일 음료를 구입하셔야 합니다.

역 앞 광장으로 나가자, 일본 스모 선수 캐릭터인 에드몬드 혼다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임 상에서 혼다는 스모 선수라서 덩치가 크게 표현되는데, 그래서인지 동상 역시 류와 춘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혼다는 스모 선수답게 육중한 체구와 마와시(스모 레슬러가 입는 전통 의상)를 입은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특유의 얼굴 표정과 자세가 살아있어, 마치 지금이라도 백열장 손바닥 공격을 날릴 것 같은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역 앞 광장이라는 개방된 공간에 혼다가 서 있으니, 마치 이 지역의 수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에드몬드 혼다 (E. HONDA)
프로필
- 신장 : 185cm
- 체중 : 137kg
- 생일 : 11월 3일
- 대표 기술 : 백열장수치기, 슈퍼 백열장수치기, 슈퍼 백귀떨어뜨리기
이 청동상은 9명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2025년 11월 29일에 건립되었습니다.


네 번째 발견 : 켄(Ken)의 동상

마지막 목적지는 카시하라 진구 주차장 입구였습니다.
긴테쓰 카시하라 진구마에역에서 카시하라 진구까지는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카시하라 진구는 나라현의 중요한 신사 중 하나인데, 그 주차장 입구 앞에 류의 영원한 라이벌, 켄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카시하라 진구는 일본 초대 천황으로 전해지는 진무 천황과 그의 황후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를 모시기 위해 1890년(메이지 23년)에 창건된 신사입니다.
약 53만 제곱미터의 광대한 부지를 가진 이 신사는 나라현 내에서 정월 3일간 참배객 수가 101만 명에 달하며, 현내 최다 참배객을 자랑합니다.

켄 (KEN)
프로필
- 신장 : 175cm
- 체중 : 83kg
- 생일 : 2월 14일
- 대표 기술 : 승룡권, 파동권, 용권선풍각
이 청동상은 4명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2024년 9월 30일에 건립되었습니다.

신사 주차장이라는 다소 의외의 장소에 켄이 있다는 것이 독특했지만, 일본의 건국 역사를 간직한 신성한 신사이자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곳에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게임 캐릭터가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야 말로 일본의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ケン銅像 · 634 Unebicho, Kashihara, Nara 634-0065 일본
★★★★☆ · 관광 명소
www.google.com
혼자만의 성지순례

카시하라시는 관광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동상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다른 관광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이 동상들을 보러 오는 사람은 저 말고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상들과 공존하고 있을 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만 혼자 신나서 구경하다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북적이는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성지순례였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동상들을 감상하며, 게임 속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카시하라시의 스트리트 파이터 동상 투어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코스는 아닙니다.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오사카, 교토, 나라 같은 메이저 관광지를 먼저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사카를 N회차 이상 방문해서 더 이상 특별히 볼 곳은 없는데, 그냥 습관적으로 일본 여행을 가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팬이거나, 게임 관련 성지순례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조용한 지방 도시를 걸으며 동상을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모험이 되고, 대도시 관광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한다면, 혹시 모를 다른 지역의 숨겨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성지들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발견과 경험들이 쌓여, 일본 여행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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