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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조혈모세포 기증 이야기 #2] 건강검진 진행 그리고 가족의 암소식

by 슬픈라면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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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 [일상 이야기] - [조혈모세포 기증 이야기 #1] HLA 항원 일치 환자를 찾았습니다.

약 일주일 정도면 나올거라던 상세 조직적합성항원(HLA)검사, 일반혈액검사 결과가 조금 오래걸려서 2주 정도 뒤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다행히도 공여 가능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담당자님으로부터 위와 같은 기쁜 소식을 들었으나, 수여받을 환자분의 건강 문제로 건강이 호전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서는 기증자 본인의 스케쥴 조정도 필요하지만, 수여받게 될 환자분의 몸 건강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에 날짜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제 경우에는 한 달 정도 기다린 끝에 다행히 환자분의 몸 상태가 호전되셔서 기증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때때로 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담당자님으로부터 환자 가족 측에서 희망하는 기증 날짜를 알려주셨고, 그 기간 기증이 가능할지를 물어보셨습니다.

기증은 월~수요일 / 수~금요일 이렇게 평일 중에 이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직장인이라면 기증 전에 충분히 회사와 이야기가 이뤄져야 합니다. 

저는 다행히 바쁜 시기도 아니고 해서 환자 측에서 희망하는 기간에 기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증일을 정하고 나면 이후에는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데요, 서울/수도권 일대의 분들이라면 크게 힘들 일은 없겠지만 저는 전라남도 여수라는 지방도시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고민이 조금 많았습니다.

일단, 여수에서는 조혈모세포 기증이 가능한 병원이 없습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전남대학교 병원을 이야기하셨고, 서울의 병원 몇 곳을 이야기하시면서 어디가 편할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자차가 없기 때문에 병원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했는데, 위치상으로는 같은 전남권인 전남대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아보이나, 여수에서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고 환승을 진행해야 하는 점, 그리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해당 지역까지 가는 교통편이 축소되었을 경우 다시 여수까지 되돌아 오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서 서울 쪽 병원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화순가는 길은 몰라도 서울가는 길은 잘 알고, 돌아 올 때의 교통편 역시 서울은 밤 늦은 시간까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수로 돌아 올 수 있을테니까요.

이 때 걱정되었던 것은 '기증 과정에서의 모든 비용은 환자 측에서 부담한다는데, 서울에서 입원하게 되면 환자 측에 더 부담이 가는 것은 아닌가?'였는데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 담당자님께 여쭤보니 진행비용은 전남대병원에서 하나 서울에서 하나 비슷한 수준이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로 go!


병원 측의 진행 가능 유무, 협조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또 며칠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병원은 해당 기간 입원이 어렵다고 하셔서 다른 병원을 이야기해주셨고, 괜찮겠는지를 여쭤보시는데, 어느 병원이건 환자 측이 희망하는 날짜에 일처리가 될 수 있다면 OK인거라서 좋다고 답변드렸습니다.


기증일과 기증하는 동안 입원할 병원까지 확정되었습니다.

입원을 한 달 정도 앞 둔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서 아침 일찍 여수엑스포역으로 향했습니다.

건강검진은 입원할 병원에서 진행하게 되며, 건강검진일 역시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며칠 몇 시까지 00병원으로 오라'고 담당 코디네이터 선생님 연락처와 함께 알려줍니다. 

병원에 오전 11시까지는 도착을 해야해서 이른 시간 KTX를 탔습니다.

갤럭시워치 액티브를 확인해보니 4시간 26분 정도 잔 것으로 확인됩니다.
건강검진 전 날에 6시간 이상은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은데, 부족한 수면시간을 열차 안에서 채우려 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KTX 열차의 진동 탓인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한 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담당 코디네이터님과 통화 끝에 겨우 병원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인데도 대형 병원은 북적거렸습니다.

접수부터 수납, 검사 진행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코디네이터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사진 속 제 이름이 적힌 카드는 접수 과정에서 코디네이터님께서 만들어 주신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진료카드입니다. 이 병원에 제가 입원하거나 진료를 보러 오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념으로 챙겨뒀습니다.

병원에서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X-ray 촬영 등을 진행했고, 조혈모세포 채취를 진행할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도 이뤄졌습니다.

검사 전 혈압 측정을 진행했는데 수면 부족 탓인지 혈압이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측정해보니 약간 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상태.

병원 입원 시 보호자의 연락처와 생년월일, 관계 등이 필요해서 동생 연락처를 알려드렸는데 도무지 동생의 생년월일이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동생은 일하느라 바쁜지 연락도 안되고... 어쩔 수 없이 동생 생년월일 확인을 위해 어머니께 연락드렸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빠 암이랜다. 지금 병원에 왔어."

혈액암 환자를 돕기 위해서 검진 받으러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온 날, 정말 갑작스럽게 접하게 된 아버지의 암 소식.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건강검진 진행을 위해서 동생 생년월일만 물어보고 통화를 종료해야 했습니다.

통화 종료 후 다시 한 번 혈압을 측정했는데, 전보다 혈압 수치가 급상승했습니다. 충격을 받아서인건가...

코디네이터님께서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는지를 물어보셨고, 잠을 못 자고 아버지 소식 접해서 충격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평상시에는 정상 수치를 보여준다고 답변드렸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들을 진행하고 담당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른 기증처럼 내 몸 안에 있는 장기 조직 이런 것을 떼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물에 있는 물을 길러서 주는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채취한 골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회복된다며 어려운 시기에 환자분을 위해서 큰 일 하시는 거라고, 지금 하신 이 고귀한 행동이 나중에 덕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과의 면담을 끝으로 건강 검진은 종료되었고, 코디네이터님께서 음료를 하나 사주셔서 음료를 손에 쥐고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어머니께 전화드려서 갑자기 왠 암인지를 물었더니, 작년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때 별일이 없었어서 올 해에는 검진을 진행하지 않으려 했는데, 올 해 아버지가 국가건강검진을 받게 되서 암검사도 진행하게 되었고, 위 벽에 작은 암세포가 확인되었다는 것 입니다.

건강검진을 진행한 여수전남병원에서는 채취한 세포를 화순전남대병원으로 보냈고, 이에 위암 초기인 것 같으니 병원에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순전남대병원 검사를 진행하려 한다는데... 시기가 참...

위암 초기가 아니라 그 이상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직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있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소리도 못 듣게 했는데 잘 못 되시면 어떡하지.... 온 갖 잡생각, 불길한 생각에 여수로 다시 내려오는 발걸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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