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하얼빈역이 어디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 MBC 대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토요일 대표 예능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은 4725일 동안 총 563회 방송이 되었고, 긴 방송 기간과 많은 방송회차 만큼 수많은 명장면과 어록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출연진 (거성) 박명수가 콩트를 할 때마다 '이보시오~ 여기 하얼빈역이 어디오?'라고 말하던게 기억에 남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지인과 함께 박명수 형님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하얼빈역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만행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일제수탈관
2019년 늦은 가을 무렵...
지인과 함께 들른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
이 곳은 작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마을을 재현한 곳입니다.
입구에 있는 아리랑 문학마을 안내도에는 친절하게도 관람 순서와 동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 곳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지인이 '가보자'고 해서 따라간 탓에 윗 순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관람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관람한 곳은 일제수탈관.
이 곳 입구에는 고무신과 옛 의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별도 이용료없이 무료로 고무신과 의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강호동이 입는 검정 망토를 두르고, 옛날 교복 모자를 쓰고, 푹신한 운동화 대신 고무신을 신고 본격적으로 일제수탈관을 관람해봅니다.
일제수탈관에서는 이름 그대로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우리의 땅에서 나고 자란 쌀, 곡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빼앗아 갔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 책에서 봤던 사진들, 교육받았던 내용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서 쓱 훑어보다가...
''울부짖은 의병'이라는 동상을 보고 한 동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 팔을 뒤로 묶여 머리는 일본군의 군화발에 짖밟히고, 작두에 의해 목이 반쯤 잘려나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했는지 확 와닿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문학마을에서 본 그 어떤 사진, 그 어떤 문장보다도... 더 강한 충격으로 머릿 속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얼빈역에 다녀왔다면서 김제에는 왜?
글 서두에 분명히 개그맨 박명수가 찾던 '하얼빈역'에 다녀왔다고 했으면서 왜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아리랑 문학마을 안내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셨다면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이 곳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에는 하얼빈역이 있습니다.
물론 진짜 하얼빈역은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역사 속의 하얼빈역은 중국에 있고, 아리랑 문학마을에는 1910년 경 하얼빈역의 모습을 재현한 건물이 있습니다.
하얼빈역은 일제수탈관 뒷 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약 3분 정도 도보 이동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아리랑 문학마을 내에 위치했기 때문에 일제수탈관에 놓여진 의상을 입고 이동하는 것도 가능!
아리랑 문학마을에 있는 하얼빈역은 1910년 경, 다시 말해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역사의 날인 1909년 10월 26일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실제 크기의 60% 정도로 구현을 했다고 합니다.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제법 잘 꾸며놓은 모습.
하얼빈역 1층에 복합영상관과 제1전시관이 있는데, 제가 방문했을 때 복합상영관은 내부 수리 중이었습니다.
제1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격을 가한 안중근 의사와 총에 맞고 쓰러지는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그 현장은 아니지만,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해놓아서 절로 숙연해지더군요.
다시금 실내로 들어와서 하얼빈역 2층에 올라서면 제2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2전시관에서는 소설 아리랑을 집필하기까지 조정래 작가가 다녀간 취재현장과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참 알찼는데... 사진에서도 보이듯, 시트지가 들뜨거나 울퉁불퉁 울어버린 모습이 옥의 티로 느껴졌습니다.
어떤 곳은 시트지가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는데, 김제시의 몇 안되는 관광자원 중 한 곳인 만큼 김제시에서 이 곳에 대한 재정비를 해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제 수탈기관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리랑 문학마을 안내도에 따르면 일제수탈관을 관람한 뒤 들러야 하는 일제수탈기관.
바닥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어서 어떤 순서로 기관들을 관람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 순서를 지키지 않고 관람했다는 것...
그래서 건물들의 순서가 뒤죽 박죽인 점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면사무소.
1910년 일제가 수탈정책을 강화하면서 지방행정조직까지 정비할 목적으로 ‘면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면사무소라는 행정관청이 생겨났습니다.
면사무소라는 행정관청의 등장은 일제의 수탈과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재소.
요즘으로 치면 파출소 같은 곳으로, 일본 순사가 근무를 했습니다.
주재소의 순사는 탄압과 감시와 억압이 심해서 조선인들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에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 중 하나로 "왜놈 순사 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리랑 문학마을에 재현된 죽산주재소에서는 취조실과 일본 순사들이 사용했던 무기, 유치장을 볼 수 있습니다.
정미소.
소설 아리랑의 한 구절이 벽면과 내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옵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함으로 인해서 힘들었던 우리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체국.
숙직실과 전화 교환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큰 기대하지 않고 들렀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지인이 김제에 놀러가자고 할 때... 솔직히 '거기에 뭐 볼게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가자고 하니까 따라 가기는 했지만, 볼 거 없어서 바로 되돌아가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물렀고, 해가 뉘엇뉘엇 저물 즈음에서야 관람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부지 면적이 넓었고, 볼거리가 다양했으며, 무료로 옛 의상 체험과 민속놀이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데, 아리랑 문학마을 내 시설들을 둘러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는지,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하고, 한글을 사용하며 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부 관람객들이 전시물에 해놓은 낙서와 울퉁불퉁 울어버린 시트지 등을 재정비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김제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장소입니다.